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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의 이야기 나무

요즘의 나는 동심을 기억하는 것일까 아니면 나이가 드는 것일까. 예전에는 동화책을 봐도 감흥이 없고 어떤 느낌을 내 안에 남긴다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어떤 종류의 그림책을 좋아한다는 뚜렷한 기호도 없지만 일단 그림책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졌다. 오히려 좋은 그림책을 만나면 너무나 마음이 설레고 좋아 비슷한 책을 찾아 헤매곤 한다. 그러던 중 레인 스미스 작가의 『할아버지의 이야기 나무』란 책을 만나게 되었는데 다시 한번 마음이 동요되는 것을 느꼈다. 뭐랄까. 내가 잊고 있었던 혹은 오래 전에 듣고 잊어버렸던 이야기를 만난 기분이었다.     증조할아버지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한 꼬마가 등장한다. 할아버지가 어떻게 살아왔고 어떠한 에피소드가 있었으며 할머니를 어떻게 만났는지 직접 들은 이야기를 그대로 전달해 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문장은 짤막하지만 그 안에서 지금껏 보내온 세월이 겹겹이 쌓여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였다. 그 이야기와 함께 펼쳐진 그림이 압권이다. 모든 이야기가 정원에서 펼쳐지는데 할아버지가 닭을 길렀다는 이야기를 할 때면 닭 모양의 나무가 등장하고 좋아하는 여자 친구 이야기를 할 때면 여자아이 형상의 나무가 드러난다. 그 모든 것을 상대하고 있는 것은 꼬마다. 꼬마가 마치 할아버지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토대로 성장하는 듯한 착각이 일기도 한다.     할아버지가 살아온 삶에서 다양한 일들이 있었지만 길고 지루하게 늘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짧은 문장과 그림을 통해서 세월의 사이사이에 어떠한 일들이 있었는지 짐작하게 하면서 알려주지 않은 시간들까지 가늠하게 한다. 그리곤 할아버지에게 많은 손주가 생겼고 증손자도 생겼는데 그게 바로 자신이라고 소개하면서 현재의 할아버지 또한 소개한다. 기억력이 좋으셨지만 지금은 종종 깜빡하시는 할아버지를 이야기하면서 있는 그대로의 할아버지를 드러낸다. 여전히 정원에서 나무를 다듬고 있는 할아버지. 그런 할아버지 곁에서 이것저것 빈틈을 메워줄 것만 같은 꼬마.     할아버지가 기억력이 약해져도 괜찮다고 말하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정원이 모든 걸 기억하고 있을 거란다. 할아버지의 정원은 언제든지 할아버지가 살아온 삶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정원에서 할아버지와 꼬마는 행복해 보인다. 할아버지의 정원을 보고 꿈꾸듯 자라날 아이가 보인다. 마지막 그림은 아이가 할아버지의 모습을 닮은 나무를 만드는 모습이다. 아이가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기억하는 한, 할아버지의 정원 안에 할아버지의 모든 이야기가 들어있다고 생각하는 한, 이 이야기는 끝이 날 것 같지 않다. 오히려 이야기가 쌓이고 쌓여 더 아름답고 궁금증이 가득한 정원이 될 거라 생각한다.     나에겐 조부모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어 도란도란 옛 이야기를 들으며 컸다는 사람들을 보면 그렇게 부러웠다. 자칫 이 책을 읽으면서 부러움이 일어 본질을 가릴 뻔 했지만 정원 속에 숨겨진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그것이 꼭 증손자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누구나 들을 수 있는 이야기고 조금만이라도 귀를 기울인다면 주변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접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타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기에, 심지어 가까운 가족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기에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결코 혼자가 아님을, 혼자 태어나고 혼자 자란 것이 아님을 단순하게 일깨워 준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누구와 연결되어 있으며 나보다 먼저 살아온 사람들이 어떠한 시간을 거쳐 이 자리에 있는지를 돌아보게 되었다. 그것을 일일이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뿌리를 알고 있으면 현재 위치를 잃어버릴 염려는 없다는 생각. 아직도 정원에서 발견해야 할, 그리고 발견 할 이야기가 너무나 많다.

2012 칼데콧 아너상 수상! 레인 스미스의 두 번째 칼데콧 수상 작품!2011 뉴욕 타임스 선정 우수 그림책2011 미국 일러스트레이터 협회 은상 수상할아버지의 아주아주 오래된 기억들로 이루어진 오래된 나무 이야기!할아버지는 농장에서 자란 소년이었고, 전쟁에 나간 군인이었고, 행복한 남편이었으며, 솜씨 좋은 원예사였어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뛰어난 예술가였지요. 할아버지를 찾아가는 어린 손자를 따라 푸른 잎이 반짝이는 정원을 거닐어 보세요.할아버지의 아주아주 오래된 기억들이 기발한 모양으로 꾸며진 나무가 되어 우리에게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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