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인연으로얻은 시집이다. 읽고 있기가 쉽지 않다. 어렵다는 느낌보다는 계속 읽어 나가기가 어렵다고 하는 게 더 적절할 것 같은데 그 이유를 명확하게 말하기가 또 어렵다. 그렇지만 조금이라도 분명하게 보고자노력을 해 보려고 한다. 처음에 와 닿아서 걸린 것은 시어들이다. 쉽게 쓰기 힘든 단어들인데 많이 보인다. 칼, 해골, 폭발, 지옥, 뼈, 실종, 무덤......거칠고 두려운 명사들.용언으로 들어서면 더 부담스러워진다. 찢고 죽고 깎고 밟고...... 마치 이런 단어들을 앞에 늘어 놓고 이들을 골라 엮는 것처럼 생각될 정도로 내게는 떠올리기 어려운시어들을이어간다. 이렇게 쓰는 마음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사는 게 어떠하기에 굳이 삶의 반대쪽에 있는 듯 싶은 단어들을 가져와서 어루만지고 있는 것일까. 작가가 이렇게 쓰는 데에는이유가 있겠지. 내가 시를 통해 그 이유를 짐작하고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으면 아무런 어려움이 없는 것일 텐데, 그렇지 못하니이렇게 자꾸만 뒤적이는 것이겠지.밝고 환한 이미지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또 누군가는 어둡고 기괴한 이미지를 좋아할 수도 있는 것이니 결국은 취향의 문제인 것인가.내가 모르는 분야에 빠져 있는 사람을 이해하는 데에는 시간이 더 걸릴 것 같다. 그래도 최근에 미스터리나 SF 관련 글을 읽기 시작하면서 예전과 달리 공포나 호러 쪽에 관심이 생기기는 한다. 현실이 아닌 환상 쪽 영역에는아주 무지했던 것인데 이 시집의 시들이 언뜻언뜻 다가오는 걸 보면 내가 영 멀리 있는 건 아닌 모양이다. 어떤 호러도 살아가는 일만큼 지독한 건 없다고 한다더니 시인이 내비치는고통의 표현들이 그만한 무게의 삶을 지나왔기에 가능한 것이었을까. 이 모든 게 막연한 내 추측일 뿐 이만큼 와 보아도 여전히 분명한 건 없구나. 쉬운 글, 어려운 글은 따로 있어도 쉬운 삶, 어려운 삶은 따로 없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저마다의 몫이다.
세계의 불행과 폭력을 달게 삼키며
냉랭한 시적 거리감을 쓰게 뱉는
익명의 체험담들
2004년 [시와사상]으로 등단하여 첫 시집 조용한 회화 가족 No.1 로 지리멸렬한 일상을 세계를 전복시키는 블랙코미디로 반전시킨 시인 조민의 두 번째 시집 구멍만 남은 도넛 이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구멍만 남은 도넛 은 대상과의 거리감을 유지한 채 감동과 연민이 없는 냉랭한 어조로, 관계의 폭력성을 응시한다. 조민의 시 ‘쓰기’는 일상에서 비일상으로, 가족에서 세계로, 내러티브를 변주하며 세계의 불행과 폭력을 견디는 익명의 체험담이 된다.
1부
후보자 13
나의 수수밭 14
사이버리아드 16
폭죽의 맛 18
백색소음 19
타투 레터링 20
흰옷 입은 메티 1 22
세상의 모든 아침 24
자두 만세 26
니체의 사과 27
가족 감각 28
나의 도보 여행자 30
일요일의 조건 32
가이동가이서 34
릴리트 36
우리는 몇? 37
멜랑콜리아, 오후 38
占뼈 40
구름에 달 가듯이 42
우린 모두 가족처럼 43
니체의 목도리 44
나의 아름다운 거품 세탁소 46
B컷 48
2부
애자 51
싱크홀 52
인생들 54
북경 아침 56
하이퍼그라피아 58
일러두기 60
하루살이 떼를 머리에 쓰고 62
토리노의 말 63
습신 64
꽃밭에서 66
숏컷 68
생일은 계속된다 70
비인칭의 화법 72
비토 두부 74
공설 운동장 76
나의 삼천포 78
팔포 79
미스테리아 80
당신의 화자話者 82
옥타곤 -주먹들 84
3부
패총 87
픽션들 88
마카롱은 마카롱으로 90
주먹이 운다 3 91
아웃 & 줌 92
의천도룡기 94
설날 96
컵에 묻은 입술 98
수국과 의자와 고양이와 100
아버지 -f14, 1/200초, 19mm, pm8 101
구멍만 남은 도넛 102
가족 감정 104
3분 교차로 106
비등점의 한때 108
차강티메 110
비정신기생체 112
여름 저수지 114
단편들 115
동물 -실험 116
협객 117
배드민턴 강좌 118
작품 해설│김상혁
글쓰기는 허무하지 않다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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