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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다리 산책

백소혜 2023. 5. 21. 13:01

2009년부터 지금까지 한 달에 한 번꼴로 여행을 다녔다. 여행이라고 해봐야 거의 대부분이 ‘당일치기’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많은 곳을 향했던 것만은 사실이다. 일상으로부터 벗어났다는 점만으로도 여행은 벅찬 감동을 내게 선사했다. 되도록 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기록으로 남기려 들었지만 완벽할 순 없다 보니 내 발길이 머물렀던 곳의 일부는 이미 망각의 영역으로 보낸 지 오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억에 남는 장소들이 있다. 송광사에서 만난 다리 위에 섰을 적엔 마치 속세로부터의 탈출을 도모하는 것 마냥 설렘이 컸다. 과장을 약간 보태 끝이 보이지 않던 강천산 구름다리 또한 잊을 수가 없다. 튼튼한 철제 구조물이니 바람이 분다 한들 끊어질 리 없을 터임에도 긴장된 마음을 달래는 데 적잖은 시간을 필요로 했었다. 그런가 하면 여수 돌산도로 진입하던 다리는 내게 오묘함을 선사하기도 했다. 당시 나는 꾸벅꾸벅 조느라 섬으로 진입했다는 사실조차도 인지하지 못했다. 다리 하나를 건넜을 뿐인데 한 쪽은 육지요, 다른 한 쪽은 섬이라는 사실이 어찌나 신기했던지 모른다.   여행은 특수한 상황이다. 때때로 살면서 느끼는 절박함으로부터 벗어나 있기에 여행에서의 경험들은 ‘추억’이 되어 우리 곁에 남는다. 여행 도중에 만난 다리가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유 또한 이와 같지 싶다. 아마도 다른 이들 역시 살면서 수많은 다리를 건넜고, 그 중 여행에서 만난 다리들을 아름답게 기억하고 있을 듯하다. 다리는 여러 모로 편리함을 선사한다. 단절된 두 공간을 하나로 이어주는 다리가 아니었더라면 지금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뱃멀미에 시달리거나 아예 섬 안팎을 오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오로지 편리함 측면만을 주목하고 싶지는 않다. 다리에 깃든 수많은 이야기들을 놓치고 싶진 않기 때문이다. 여전히 부산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볼거리를 선사하고 있는 영도다리에서는 시간이 읽혔다. 지금이야 다리가 들리는 모습에 감탄하며 사진을 찍기 바쁘지만 이 다리는 무려 20여 곡의 가사에 등장할 정도로 많은 이야기를 품은 장소였다.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던 이들은 아마도 다리를 건너며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고향을 향한 짙은 그리움을 느꼈을 것이다. 철원 승일교 또한 아픈 역사와의 만남이 가능한 장소였다. 여전히 한국전쟁의 기억을 여느 곳보다 더욱 많이 지니고 있는 철원 지역이다. 남과 북이 맞닿은 곳인 만큼 다리의 모양새부터가 남다르다. 일부는 남쪽이 놓았고, 나머지는 북쪽이 놓았다는 것은 모양만 보아도 수긍이 간다. 분단으로 인해 교류 없이 지낸 시간이 길어질수록 이질성은 짙어지기 마련이다. 다리가 놓여 있던 시절에도 이토록 달랐거늘 지금은 과연 대화라는 걸 할 수 있기는 할까, 우려가 앞선다.요동치는 마음을 다 잡기에는 사찰에 놓인 다리가 제격 같다. 세속적인 삶을 이제껏 살아온 이들에게도 얼마든지 열려 있는 다리를 따라 걷다 보면 사찰 특유의 정갈하고도 고요한 기운이 온몸을 감싸고 도는 걸 느끼게 된다. 남녀가 핑크빛 사랑을 꿈꾸던 공간으로서의 다리도 괜찮아 보인다. 백제의 궁남지 안 정자에 닿을 수 있게끔 놓인 긴 나무다리가 없었더라면, 신라의 안압지 안에 조성한 삼신도가 그저 외딴 섬으로만 남았더라면 왠지 두 나라의 역사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생각해 보게 된다. 삶이 버거워지면서 우리는 다리가 주는 낭만 따위를 잊게 됐다. 기쁨은 물론 슬픔조차도 사치여서 많은 이들은 오로지 다리의 편리성만을 언급한다. 섬에 다리가 놓이면 경제적 가치가 얼마만큼 상승된다는 식의 해석도 물론 중요는 하다. 아무리 육지와의 거리가 가까워도 배편을 이용해야만 섬을 들락날락 할 수 있는 주민들로서는 다리 하나의 존재가 곧 삶의 질을 좌우하기도 한다. 그러나 돈으로는 결코 환산할 수도 없을뿐더러 환산해서는 결코 아니 되는 가치들이 분명 있다. 다리에 깃든 이야기들이 바로 그것이고, 섬이 섬으로 남았을 때의 이야기들 또한 여기에 속한다. 우리가 다리를 통해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고 있는지, 한 번 즈음은 따져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몇 달 전 교동도를 다녀왔다. 지도를 볼 때마다 북한과 제법 가까운 거리가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는데, 다리가 놓이고 나니 모든 게 너무도 수월해졌다. 배를 타고 5분도 걸리지 않았지 싶은 석모도에도 조만간 다리가 놓일 예정인 듯하다. 다리가 놓이면 자연스레 배는 사라질 것이다. 다리로 인해 생기는 추억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다리 탓에 잊혀져 가는 기억도 생성된다는 사실은 참 아이러니하다. 

다리라는 문화 그 연결의 힘에 대하여다리는 사계절이 따로 없습니다. 봄이면 봄, 여름이면 여름, 가을이면 가을, 겨울이면 겨울에 맞는 다양한 이야깃거리들이 깊은 울림으로 나그네들을 맞이합니다. 문명의 구조물에 지나지 않던 수많은 다리에 이야기라는 문화의 발걸음이 더해지면서, 우리 곁에 살아있는, 그리고 오랜 세월 함께하는 존재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어제는 통도사에서 새벽 찬 공기를 마시며 굴뚝의 연기따라 세상의 근심을 잠재우고, 오늘은 불국사 청운교와 백운교를 바라보며 진정 아름다운 삶이란 무엇인가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당신은 지금, 어느 곳을 향하면서 길 위에 서 있는가요? 그 길에서 누구를 만났고, 무엇을 보았으며, 어떤 생각을 가슴에 담고 있는가요? 당신이 걷고 있는 길의 역사는, 다리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요?

들어가며_다리가 내게 말을 걸어옵니다
추천의 글_이종근 기자가 놓은 새로운 다리(나선화 문화재청장)

경상도
기억하면 아련해지는 것이 추억, 부산 영도다리
비가 와도 나비는 날아갑니다, 청암정 돌다리
승천하지 못한 한 마리의 용 길을 묻네, 통도사 항룡교
우리의 영원한 불빛, 구미산 용담교
3개의 섬 5개의 다리로 연결하다, 창선-삼천포대교
진정한 불국토가 여기 있는가, 불국사 청운교와 백운교
우리 삶은 그 자취를 이야기의 형태로 남긴다, 경주 월정교
만년을 살고 싶어라, 영산 만년교

전라도
쪽빛 하늘 닮은 사람, 섬진강 징검다리
연꽃 향기에 취해 머물다, 덕진공원 연화교
짜릿해야 기분이 좋을 때, 대둔산 구름다리
산골 마을로 돌아간다는 것, 운조루 나무다리
내장산의 숨겨진 보물, 우화정 징검다리
투명한 잠자리가 되어, 송광사 삼청교
나를 안아주는 물안개, 선암사 승선교
3홍의 나라, 선운사 극락교
배롱나무의 붉은 꽃노을, 귀신사 홀어미다리
담양 사람을 키운 8할의 대바람, 소쇄원 외나무다리
너와 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리, 신안 노두

강원도
오늘도 상처를 이겨내며 살아가다, 철원 승일교
내일의 희망을 기약해 볼 수 있는 특권, 정선 섶다리
모든 파도를 건넌 후 만나야 한다, 건봉사 능파교

충청도
염라대왕이 보고 왔냐 묻는다던데? 강경 미내다리
비탈길에서 자란 소나무, 개심사 외나무다리
우연처럼 보이지만 필연의 뿌리, 궁남지 다리
다정도 병이다더냐, 외암마을 다리

더하는 이야기
정조의 주교와 옛 그림에 나타난 다리
한국 문학 속의 다리
문화재로 지정된 다리
한국 고유 석교의 지역별 현황 및 시대적 분류
교비 현황

참고문헌 및 자료
도움을 준 단체 및 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