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그늘에서 행복을 보다
소노 아야코와 함께 아프리카로 떠나보자.
여행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고발르포다 아니다.
다만 저자가 가는 대로 함께 몸을 맡기고,
생각도 맡겨 저자의 느낌대로 아프리카를 느끼는 것뿐이다.
무겁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다.
많은 사진들은 우리가 익히 다른 책들에게 받아온 아프리카의 애잔한 모습들을 담고 있다.
이야기들은 그러나 잘 알지 못했던 세밀한 부분들을 건드려 준다.
공부에 대한 이야기, 병에 대한 이야기, 죽음에 대한 이야기,
생명에 대한 이야기,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나는 어쩌자고 아프리카에 태어나지 않았을까?
그래서 더 행복한가? 더 감사한가?
만약 내가 아프리카 빈민촌에 태어났다면...
이런 상상은 결코 유쾌하지 않다.
그러나 그들은 죄가 없다.
태어날 때부터 에이즈에 걸려 신음하는 그들에게 무슨 죄와 잘못이 있으랴.
다행인 것은 그들에게 아무런 세계적 지식과 정보가 없다는 사실이다.
오직 오늘 저녁 먹을 것만 찾아다녀야 하는 절박함이 강처럼 가로놓여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 첫장에 적힌 글귀는 나를 더욱 힘들게 한다.
주위의 모든 사람이
진흙 같은 빵 한 조각 때문에 투쟁할 때
고상한 즐거움을 누리는 게
옳다고 할 수 있을까
- 크로포트킨
16쪽
아무런 불빛도 목표물도 없는 황야나 사막에서는 나는 두 개의 광원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그때 절실히 깨달았다. 하나는 내가 출발한 지점에 두기 위해서이고, 또 하나는 지금 내가 있는 곳의 발밑을 비추기 위해서이다.
17쪽
우리 모두는 우리가 출발한 지점을 명심하고 항상 명확하게 기억하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자신의 삶의 원형, 출발한 지점의 풍경을 항상 마음의 시야에 간직하거나 적어도 지식으로나마 알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목적지만 알고 있어서는 안 된다.
23쪽
동물에게는 현재밖에 없다.
94쪽
세계적으로 말해 빈곤의 정의란 바로 오늘 저녁 먹을 음식이 없음을 가리킨다.
100쪽
가끔 사람들이 배불리 먹고 사소한 행복을 맛보는 게 나쁠 리 없다.
106쪽
젖는 것에 관해서도 더운 지역 사람들은 우리들처럼 걱정하지 않는다. 젖는다 해도 ‘날이 개면 다시 마른다’는 사고가 철저히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다 마른 세탁물이 소나기에 젖은 채로 버젓이 널려 있는 광경은 흔히 볼 수 있다.
자연은 손대지 않는 편이 좋다.
108쪽 - 폭삭 녹아내리는 집
그러나 건조한 계절에 굳은 진흙 벽은 다시 비가 많이 내리는 계절이 되면 매년 바깥쪽에서부터 조금씩조금씩 비에 녹아 떨어져나간다. 그래서 6년이나 8년, 혹은 10년 정도 지나면 어느 날 갑자기 폭삭 붕괴된다. ‘아무개네 집은 지난달에 녹아내렸다’는 식의 표현을 브라질의 어느 지방에서 처음 들었을 때 깜짝 놀랐지만,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녹아내린 집은 문자 그대로 불이 난 것도 아닌데 자연으로 돌아가 흔적도 없다.
111쪽
지나가버린 것은 추억일 뿐이므로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사막은 진정한 정숙으로 가득 찬 공간이다. 라디오 녹음실에는 죽은 듯한 정적이 흐르고, 사막에는 살아 있는 정적이 흐른다.
144쪽
교육 따위 받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다. 왜 교육을 받지 않으면 안 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학교에 가서 교육을 받고 자격을 얻어 회사원, 일중독자가 되는 것이 과연 교육을 받는 본래의 목적이었는지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145쪽
학교를 나왔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교양인이 되는 건 아니다.
154쪽
땅이라도 있어 잠잘 수 있음을 자각한다면 인간은 공포로부터 해방된다. 오늘 밤 나는 어디서 자야 할까 하는 공포에 떨지 않아도 된다.
181쪽
조리 있게 이유를 설명하는 일이란 아프리카 사회에서는 극히 이례적이다. 게다가 인생사의 대부분은 결국 기다리는 수밖에 해결법이 없다.
207쪽
그렇다. 모든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내 앞에는 어머니가 있고 어머니 앞에는 할머니가 있다. 그러한 사람들이 육체와 영혼 양쪽에서, 기쁨과 슬픔에 얼룩져 살아왔다. 기쁨은 슬픔의 조그마한 악센트, 장식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오히려 그들은 견뎌왔다. 상처의 고통, 출구가 보이지 않는 배고픔, 막을 수 없는 추위, 불합리한 학살을 견뎌내왔다. 그 외에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빈곤, 기아, 질병이 곧 삶인 오지인들의 모습을 통해, 그동안 너무나 당연해서 제대로 느낄 수 없었던 행복의 원점과 인생의 본질을 되돌아보게 한다.
오랜 작가 생활과 NGO활동으로 전 세계 100개국도 넘는 나라를 방문하고 여행해온 저자 소노 아야코. 수십 년에 걸쳐 만나온 오지인들의 삶과 전쟁?재난 등 역경을 이겨낸 사람들의 인생철학은 소노 아야코 작품의 원천이 되어왔다. 오랜 세월 그의 작품들이 사랑받을 수 있었던 것도 ‘늘 인생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인생의 본질을 꿰뚫는 언어 로 공감대를 형성해왔기 때문이다.
이 책 역시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 인도, 동남아시아의 오지에서 만난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단순한 눈물과 동정의 대상을 넘어 보다 심오한 인간의 내면과 문명인의 사고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한계를 리얼하게 꼬집어 문명인의 어리석음과 행복의 기본이 무엇인지 반추하게 만든다.
-프롤로그, 원점을 바라보며
-돈을 벌어야 하는 아이들
-밥 먹듯이 굶는 사람들
-세계는 내가 사는 동네뿐
-길이 없는 마을들
-사람을 배신하는 험로
-물 한 동이의 생존
-에이즈든 설사든 죽는 건 마찬가지다
-상상할 수 없는 가난
-상식을 벗어난 주택들
-고온에서는 인간의 사고가 불가능하다
-부족하니 불결할 수밖에 없다
-가난한 국가의 무능력
-배우지 못한 사람들의 이기주의
-빈민가의 행복 필수품
-인간의 식사, 동물의 식사
-사람에게 친절한 자연은 없다
-거목 아래 어르신들과 민주주의
-어이 없는 죽음들
-에필로그, 다시 원점에 서서